박*구 선생님은 올해 60대 남성이다.
독실한 불자이신데 불교에 관한 책도 쓰셨고, 말투와 행동에서도 스님과 같은 풍모가 느껴지는 분이다.
처음 내원한 계기는 본인의 치료가 아니었다.
부인이 몸이 허약해서 보약을 지어주고 싶다며 수원 영통에서 천천동까지 함께 찾아왔다.
수원 영통에도 실력 좋은 한의원 원장님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먼 길을 찾아오신 것이 인상적이었다.
부인은 진맥을 하지 않아도
한눈에 매우 허약하고 마른 체격이었다.
혈색도 창백하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옆에서 남편이 부인을 챙기는 모습을 보니
남편의 도움 덕분에 어느 정도 건강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기혈이 모두 부족했던 부인의 상태
진맥을 해보니 부인은 기혈이 모두 심하게 허한 상태였다.
오랫동안 뇌신경과 관련된 문제로 약도 복용하고 있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기혈허(氣血虛)란
몸을 움직이고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운과 혈액의 바탕이 부족한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몸의 전반적인 체력과 회복을 뒷받침할 여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 정도로 기혈이 부족하면 혼자서 자신의 몸을 제대로 건사하기가 힘들고,
주변에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부인에게는 기와 혈을 크게 보하는 방향으로 체질에 맞춘 한약을 처방했다.
그런데 한 달쯤 뒤 박 선생님께서 친척 한 분을 모시고 다시 한의원을 찾아왔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다른 분들을 모시고 오셨지만 본인은 진료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본인은 건강하신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 알고 보니 40년 동안 앓아온 고질적인 알레르기 비염이 있었다
여러 차례 한의원에 오시면서 알레르기 비염 첩약 건강보험 포스터를 보셨던 모양이다.
올해 8월 중순쯤 박 선생님께서 진료를 신청하면서
사실 본인에게도 오랫동안 고생해온 고질병이 하나 있다고 말씀하셨다.
바로 40년 동안 이어진 알레르기 비염이었다.
알레르기 비염은 첩약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도 한약 치료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박 선생님의 비염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았다.

■ 최루가스를 마신 대학 시절부터 시작된 비염
박 선생님은 대학 시절인 약 40년 전,
본의 아니게 최루가스를 맡은 뒤부터 비염 증상이 시작됐다고 했다.
그런데 일반적인 알레르기 비염과는 조금 다른 특징이 있었다.
기온 차이나 먼지, 담배 연기 등에 민감한 것이 아니었다.
특이하게도 MSG가 들어간 음식을 먹고 나면
이틀 정도 재채기와 맑은 콧물이 계속되고 코가 막히는 증상이 반복된다고 했다.
집에서는 MSG를 넣지 않고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문제는 외식이었다.
요즘 외식이나 배달 음식을 먹으면서
MSG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음식의 질이 좋은 식당에서는 소량의 MSG가 들어가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었지만,
대중적인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나면 상황이 달랐다고 한다.
콧물과 눈물 때문에 말할 수 없이 괴로울 정도였다고 했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잘한다는
양방과 한방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고 했다.
■ 솔직히 나 역시 긴장이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다.
솔직히 다른 의사들도 못 고친 병이니
내가 못 고쳐도 지독한 알레르기 비염이니 면책은 될 것 같다는생각도 들었다.
알레르기성 비염에 처방가능한 첩약 건강보험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니 환자 부담금이 적어 환자 부담도 크지 않아서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진찰을 시작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비염을 제외하면 박 선생님은 상당히 건강한 분이었다.
마른 체격이기는 했지만 잘 먹고 잘 잤고, 대변과 소변도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성인병도 없었다.
오랜 세월 비염으로 고생했지만
그 외에는 특별한 질환 없이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 오장육부의 상태를 세밀하게 살펴보다
진맥을 통해 오장육부의 상태를 세밀하게 살펴보았다.
한의학적으로 보았을 때 폐와 비의 기능이 허하고
심·간·신의 기운은 상대적으로 실한 폐허증(肺虛證)의 상태로 판단했다.
한의학에서 폐는 단순히 호흡기관인 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호흡과 피부, 외부 환경에 대한 몸의 방어 기능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폐허증은 이러한 기능적인 측면에서 폐의 기운이 부족하다고 보는 한의학적 진단이다.
박 선생님의 경우에는 이러한 체질적 상태와
오장육부의 균형을 고려해
알레르기 체질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치료를 시작했다.
■알레르기 체질을 조절하는 한약과 사암 오행침
알레르기 체질을 조절하기 위한 첩약을 복용하도록 하고 침 치료도 함께 진행했다.
침 치료는 사암 오행침을 활용했다.
박 선생님의 진맥 결과에 따라
태백혈과 태연혈의 기운은 보하고, 대돈혈·소충혈·음곡혈의 기운은 사하는 방식으로 치료했다.
단순히 비염 증상이 있는 코 주변에만 침을 놓은 것이 아니라,
진맥을 통해 파악한 오장육부의 균형을 고려해 침 치료를 진행했다.

■ 침 한 번 맞고 외식을 했는데 비염이 조용했다
박 선생님이 침 치료를 한 번 받고 집에 돌아간 뒤 예전처럼 외식을 했다고 한다.
평소 같으면 음식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재채기와 맑은 콧물이 시작되고 코가 막혀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 일 없이 조용하게 넘어갔다고 했다.
본인도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며칠 뒤에도 다시 외식을 했다고 한다.
그동안 외식만 하면 ‘난리 부루스’를 치던 코가 이번에도 조용하게 넘어갔다고 했다.
나도 신기했다.
40년 동안 음식만 먹으면 반복되던 비염 증상이 침 치료 이후 달라진 것이다.
■ 40년의 비염이 한 번의 침 치료로 끝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지금이 9월 중순이니 치료를 시작한 지 대략 한 달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현재까지도 코가 말짱하다고 했다.
물론 한 달 정도의 경과만으로
40년 동안 이어진 알레르기 비염이 완전히 치료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특히 알레르기 비염은 증상이 좋아졌다가
다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적인 경과 관찰이 필요하다.
다만 수십 년 동안 특정 음식만 먹으면
반복적으로 심한 비염 증상이 나타났던 분이
침 치료 이후 외식을 했는데도 이전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은
나에게도 매우 인상적인 변화였다.
■ 증상만 바라보지 않고 몸 전체의 균형을 살핀다는 것
이번 치료를 하면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은
한의학적 진료에서는 눈앞의 증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알레르기 비염이라고 하면 보통 코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한의학에서는 같은 비염 증상이라도
사람마다 체질과 오장육부의 상태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같은 알레르기 비염이라도 누구에게나 똑같은 방법으로 치료하기보다는
환자의 몸 상태를 살피고 그에 맞는 치료 방법을 선택한다.
박 선생님의 경우에도 단순히 코의 증상만을 보고 침을 놓은 것이 아니라
진맥을 통해 오장육부의 균형을 살피고 그에 맞는 사암 오행침을 적용했다.

■ 사암 오행침을 배우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40년 동안 고질병처럼 이어졌던 알레르기 비염이
침 치료를 시작한 뒤 예상하지 못한 변화를 보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암 오행침을 창시하신 사암 도인과
그 맥을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킨
소곡 이재원 선생님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침법을 후학들이 배우고 임상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에도 깊이 감사드린다.
이번 박 선생님의 사례가 앞으로도 계속 좋은 경과로 이어지는지 꾸준히 지켜볼 생각이다.
40년 동안 외식 한 번 마음 놓고 하지 못했던 분이 다시 음식을 편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번 진료는 나에게 매우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